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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를 보면서 가장 강하게 기억에 남은 인물은 역시 주지훈이 연기한 백강혁이었다.
실력은 압도적이고, 위급한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병원장이나 교수들이 반대해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밀어붙인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저 정도로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인데, 이상하게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백강혁이 그냥 계속 이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봤다.
그런데 백강혁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실제 의사가 있다. 바로 한국 중증외상 분야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이국종 교수다.
백강혁의 실제 모델은 이국종 교수일까?
이 부분은 조금 정확하게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중증외상센터》의 원작은 현직 의사인 이낙준 작가가 ‘한산이가’라는 필명으로 쓴 웹소설이다. 2020년 원작 단행본을 소개한 연합뉴스는 작품을 이국종 교수를 모델로 쓴 의학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연합뉴스
그래서 백강혁과 이국종 교수를 연결해서 보는 것이 전혀 근거 없는 해석은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백강혁을 그대로 ‘이국종 교수의 실화 캐릭터’라고 보는 것은 다르다.
주지훈은 인터뷰에서 백강혁을 연기할 때 이국종 교수를 직접 모델로 삼은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다만 이 교수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환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태도에서는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The Korea Times
즉, 현실의 외상외과 의사가 가진 정신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드라마에서는 그것을 훨씬 강력한 히어로 캐릭터로 확장한 것에 가깝다.
백강혁과 이국종 교수가 닮아 보이는 이유
두 사람에게서 가장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뛰어난 수술 실력보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다.
이국종 교수는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과 2017년 JSA를 넘어 귀순하다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의 치료로 잘 알려졌다. 또한 닥터헬기 도입과 권역외상센터 시스템 구축을 위해 오랫동안 목소리를 냈다. 연합뉴스
드라마 속 백강혁 역시 비슷하다.
돈이 얼마나 드는지, 병원 평가가 어떻게 되는지보다 지금 눈앞의 환자를 살릴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회의부터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헬기에 올라 환자에게 간다.
물론 백강혁은 여기서 훨씬 더 과장된다. 헬기를 직접 조종하고, 전쟁터를 누볐으며 웬만한 수술은 혼자 해결할 것처럼 묘사된다. 제작진도 백강혁을 현실적인 의사보다 초인적인 히어로에 가까운 인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사람을 살릴수록 적자가 나는 이상한 현실
두 사람을 비교하면서 가장 씁쓸했던 부분은 외상센터의 현실이었다.
드라마에서 백강혁은 환자를 많이 살릴수록 병원으로부터 환영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말을 듣는다.
처음에는 드라마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이국종 교수는 과거 중증외상환자를 수술할수록 손실이 커지는 의료수가 문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했고, 자신을 병원에 연간 10억 원의 적자를 만드는 사람처럼 표현해야 했던 상황을 밝히기도 했다. 연합뉴스
또한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 운영 과정에서도 인력과 병상, 닥터헬기 등을 둘러싸고 병원 측과 갈등을 겪었다. 연합뉴스
그래서 드라마에서 병원 경영진과 싸우는 백강혁을 보면서 마냥 판타지라고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백강혁이 더 통쾌했다
현실에서는 아무리 실력 있는 의사라도 한 사람이 병원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드라마 속 백강혁은 다르다.
사람이 부족하면 만들어내고, 시스템이 잘못되어 있으면 바꾸려고 하고, 윗사람이 막으면 정면으로 부딪힌다.
이 정도로 강력한 캐릭터는 조금만 잘못 만들면 유치해지기 쉽다.
그런데 《중증외상센터》에서는 오히려 그 과장됨이 매력이었다.
주지훈 역시 이 작품을 현실의 부조리를 시원하게 깨뜨리는 히어로 이야기로 바라봤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나 역시 같은 부분에서 재미를 느꼈다.
“이번에는 백강혁이 당하지 않을까?”보다
“그냥 이번에도 다 이겨버렸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보게 되는 주인공이었다.
현실에는 백강혁보다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한 가지 생각도 남는다.
현실에는 모든 환자를 혼자 살려낼 수 있는 백강혁 같은 초인이 존재하기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필요한 것은 백강혁 한 사람이 없어도 중증외상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일 것이다.
충분한 의료진과 병상, 닥터헬기, 적절한 지원이 갖춰져야 특정 의사의 희생에 의존하지 않고 외상센터가 돌아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 《중증외상센터》의 진짜 가치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주지훈이 만들어낸 강력한 백강혁 캐릭터 때문에 통쾌하게 보기 시작했지만, 드라마가 끝난 뒤에는 실제 중증외상 의료진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백강혁은 분명 판타지 속 인물이다.
하지만 그 캐릭터가 싸우고 있는 문제까지 모두 판타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현실에서 오랫동안 그 문제를 이야기해온 이국종 교수 같은 의료진의 존재를 알고 나면, 백강혁이 왜 그렇게까지 강력한 히어로로 만들어졌는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에서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대신 깨뜨려주는 사람.
그것이 내가 《중증외상센터》의 백강혁을 보면서 그렇게 통쾌함을 느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