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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방송된 SBS 드라마 **《상속자들》**은 김은숙 작가가 극본을 쓰고 강신효 감독이 연출한 20부작 드라마입니다. 이민호, 박신혜, 김우빈을 중심으로 김지원, 정수정, 강민혁, 강하늘, 박형식, 최진혁 등 지금 다시 봐도 놀라울 정도로 화려한 배우들이 출연했습니다.
오래전에 방영된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 《상속자들》은 세 번, 네 번 다시 볼 정도로 좋아하는 드라마입니다. 이미 다음 장면을 알고 있는데도 다시 보게 되는 이유는 단순히 김탄과 차은상의 로맨스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시 볼수록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사,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 그리고 한 명도 허투루 쓰이지 않는 캐릭터들입니다.
뻔한 설정인데 이상하게 뻔하지 않은 드라마
《상속자들》의 기본 설정만 놓고 보면 꽤 익숙합니다.
재벌가의 아들 **김탄(이민호)**과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차은상(박신혜)**이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여기에 김탄과 복잡한 과거를 가진 **최영도(김우빈)**가 등장합니다.
부잣집 남자와 가난한 여자, 정략적인 약혼, 재벌가의 반대, 삼각관계까지 소재만 보면 당시에도 익숙했던 로맨스 드라마의 공식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제가 《상속자들》을 여러 번 보게 된 이유는 그 익숙한 상황을 풀어가는 방식이 생각보다 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갈등 하나가 생기면 오랫동안 서로 오해하고 말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몇 회씩 끌기보다는, 인물들이 직접 부딪히고 대화하면서 다음 문제로 넘어갑니다. 물론 극적인 설정은 많지만 이야기의 속도가 쉽게 처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2013년에 나온 드라마인데도 다시 볼 때 생각보다 옛날 드라마 같다는 느낌이 적었습니다.
상속자들의 가장 큰 매력, 김은숙 작가의 대사
제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대사입니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평범하게 말할 수 있는 장면에서도 한 번 비틀어서 표현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말 한마디를 넣어 분위기를 바꿉니다.
당시 SBS에서도 《상속자들》의 특징으로 김은숙 작가 특유의 **물음표 어법과 반전 대사*를 따로 소개할 정도였습니다. 인물이 자신의 마음을 상대에게 묻는 방식이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끝나는 대사가 캐릭터의 성격까지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됐습니다.
대표적으로 김탄의 대사는 직선적으로 고백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질문처럼 던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대사 때문에 로맨틱한 장면은 더 설레고, 싸우는 장면에서는 인물의 감정이 훨씬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대사를 위한 대사가 아니라 이 캐릭터라면 정말 이렇게 말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갈등을 답답하게만 끌고 가지 않는 방식
로맨스 드라마를 보다가 가장 지칠 때가 있습니다.
서로 한마디만 하면 해결될 문제인데 말을 하지 않고, 우연히 상대방의 대화를 일부만 듣고 오해하고, 그 오해가 몇 회 동안 이어지는 식입니다.
《상속자들》에도 당연히 갈등은 많습니다.
김탄의 출생 비밀, 차은상과의 계급 차이, 유라헬과의 약혼, 김탄과 최영도의 과거, 김탄과 형 김원의 갈등까지 얽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재미있다고 느꼈던 부분은 갈등이 단순한 오해 하나로만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그 선택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김탄이 자신의 감정을 인정한다고 해서 차은상과의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출생을 공개한다고 해서 가족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인물이 하나를 선택할 때마다 그 선택에 따른 책임과 새로운 갈등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계속 앞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탄과 차은상만 살아 있는 드라마가 아니다
제가 《상속자들》에서 가장 높게 보는 부분은 주인공 이외의 캐릭터들도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영도는 단순히 여주인공을 사이에 둔 서브 남주로 끝나지 않습니다. 거칠고 공격적인 행동 뒤에 부모와 가족에 대한 상처가 있고, 김탄과 멀어진 과거 역시 그의 행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유라헬 역시 단순히 김탄과 은상의 사랑을 방해하는 약혼녀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이보나와 윤찬영은 메인 커플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연애를 보여주면서 극에 밝은 에너지를 더하고, 이효신은 부모가 원하는 인생과 자신이 원하는 삶 사이의 갈등을 보여줍니다. 김원 역시 제국그룹의 후계자라는 위치 때문에 사랑과 가족 사이에서 자신만의 선택을 해야 하는 인물입니다.
SBS의 종영 당시 평가에서도 김원, 이효신, 윤찬영 같은 주변 인물들이 각각 독립적인 관계와 갈등을 가지고 작품 안에서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저는 좋았습니다.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도 재미있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악역 한 명을 만들어 모든 문제를 설명하지 않는다
《상속자들》의 인물들은 대부분 완전히 착하거나 완전히 나쁜 사람으로만 나뉘지 않습니다.
최영도가 은상에게 하는 행동은 분명 거칠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행동 뒤에 있는 상처가 보입니다. 김원 역시 처음에는 김탄을 밀어내지만 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불안이 있습니다.
유라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한다고 해서 단순한 악역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역시 부모가 결정해 놓은 관계와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상속자입니다.
그래서 제목인 **《상속자들》**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상속받는 것은 단순히 회사와 돈만이 아닙니다.
부모의 욕망, 계급, 책임, 상처와 관계까지 함께 물려받습니다.
그 안에서 각자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는 것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재미였습니다.
오래된 드라마인데도 다시 보게 되는 이유
시간이 많이 지난 작품을 다시 보면 당시에는 좋아했던 장면이 생각보다 촌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상속자들》은 제게 조금 달랐습니다.
물론 시대적인 표현이나 설정에서는 2013년 드라마라는 느낌이 납니다. 하지만 캐릭터끼리 주고받는 대사의 속도와 관계가 움직이는 방식은 지금 다시 봐도 재미있습니다.
당시에도 김은숙 작가의 빠르고 감각적인 대사와 강신효 감독의 연출이 작품의 몰입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커플의 사랑 이야기만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김탄과 은상, 탄과 영도, 영도와 아버지, 탄과 원, 찬영과 보나, 효신과 부모까지 각각의 관계가 하나씩 떠오릅니다.
제가 《상속자들》을 세 번, 네 번 다시 보면서도 지루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 같습니다.
한 명의 주인공을 따라가는 드라마가 아니라 여러 캐릭터가 함께 드라마를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다시 봐도 좋아하는 나의 상속자들
《상속자들》은 완벽하게 현실적인 드라마는 아닙니다. 재벌가 고등학생들의 세계라는 설정 자체가 판타지에 가깝고, 로맨스 드라마다운 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판타지를 현실처럼 만들기보다 끝까지 재미있는 드라마로 만들어낸 방식이 좋았습니다.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대사가 나오고, 갈등이 생기면 그 갈등 속에서 캐릭터의 새로운 면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조연이라고 생각했던 인물도 어느 순간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이미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재생하게 됩니다.
처음 봤을 때는 김탄과 차은상의 사랑을 따라갔다면, 두 번째에는 최영도가 보이고, 또다시 보면 김원이나 유라헬 같은 인물의 마음이 보입니다.
볼 때마다 다른 캐릭터가 눈에 들어오는 드라마.
제가 《상속자들》을 오랫동안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